‘소리’처럼

목포 생활 1주일째 접어들고 있다. 25년 목사로서, 43년 동안 신앙의 터전으로 한 번도 떠난 적 없는 평강동산. 아니 떠나리라는 생각조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곳이다. 나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젊은 시절을 불살라 헌신한 곳이니. 이곳에 와서 가끔 “내가 왜 이런 결정을 했지?” 스스로 반문해보곤 했었다.


한 발짝 떨어져 과거 내 삶의 본거지를 살펴보니 내가 얼마나 안일하게 살아왔는지, 나 중심으로 사고하며 전체를 바라보지 못했는지 비로소 느끼며 부끄러워진다. 만약 계속해서 한곳에 머물렀다면 그야말로 ‘고인 물’이 되어 결국은 ‘썩은 물’이 될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냉철한 비판을 하게 되었다. ‘강물처럼 흘러가라’, ‘낮은 데로 임하라’, ‘섬기는 삶을 살아라’... 남들을 향해 얼마나 많이 외치며 설교했던가. 하지만 나 자신 속에 그런 치열한 의식과 삶의 몸부림이 없이 마치 ‘울리는 꽹과리’처럼 외쳐왔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그러던 중 이곳 목포에서 새벽예배 준비를 하며 다음과 같은 원로목사님의 설교 말씀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소리는 말씀을 나타내 놓고 자기는 없어지는 거야! 세례요한은 말씀 되시는 예수님을 나타내놓고 자신은 없어지는 '소리의 위치'에 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참된 종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가 '자기'가 나타나면은 말씀은 가려져. 말씀을 전하는 자가 사라지고 없어져야지, 말씀을 전해 놓고 자기를 나타내면 말씀이 없어지게 만드는 도둑놈이야!" - 2001년 3월 11일, "산은 높고 골은 깊다"(주일 2부 말씀 중에서).


이 얼마나 등골 오싹하게 하는 추상같은 말씀인가. 여기서 ‘소리’는 ‘말씀의 전달자’를 가리킨다. 우리는 모두 단지 하나님을 증거하는 말씀의 ‘소리’일 뿐이다. 소리는 한번 입 밖으로 나가게 되면 형체도 없이, 미련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다만 듣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울림을 주고, 그들의 삶에서 결실할 열매에 자기 자리를 내어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소리가 아니라 주인으로 살고자 한다. 내가 전하고 내가 주인공의 자리에 앉아 대접받고자 했던 것이다. 만남과 헤어짐이 교차하는 우리의 삶의 터전 속에서 만남이 왜 반갑지 않고 헤어짐이 왜 슬프지 않겠는가마는 그런 아픔 속에 우리는 조금씩 자신을 되돌아보며 속으로부터 단단해지는 법이다. 하나님 앞에 나라는 존재는 한 줌 먼지만도 못하고, 입 밖을 떠나는 순간 사라지는 ‘소리’처럼, 내 사명을 다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한곳에 오래 머물러 있을수록 사람은 필연적으로 ‘나태와 안일’이라는 짐에 눌리게 된다.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일에만 몰두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내시고, 끊임없이 먹을 것을 찾아 움직여야 하는 유목민을 들어서 구속사의 주역으로 세우셨던 것이다. 그들에게 나태와 정체는 곧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청년 그루터기와 함께한 2년의 시간이 있었기에 아쉬움 없이 ‘소리처럼’ 나의 사역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사명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어서 감사드린다. 그루터기와 함께해서 행복했고 감사했다. 어딜 가도 잊지 않고 가슴에 담아둘 사랑스러운 그대들이여!


- 홍봉준 목사

(그루터기紙 19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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